리뷰_책

[어원(語原)] 역사적 칭호편 ② 티무르대제,

john Kim 2021. 12. 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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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UR THE LAME

"절름발이 티무르"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이 있는 곳에서 1336년에 티무르가 태어났다. 역사책에서는 불쌍하고 늙은 티무르를 다른 군사 위인들과는 다르게 자주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아 보인다. 티무르 왕조를 창시하고 무슬림 세계, 중앙아시아, 인도의 일부 지역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여타 많은 지도자만큼이나 대단한 인물이다. 티무르의 부대는 약 1천7백만 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전 세계인구의 5%에 달하는 수이다. 커다란 존경을 받던 그가 1405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무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겼다.

"내가 이 무덤에서 나올 때 가장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티무르는 결코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또는 그가 살아 있을 때 태멀레인(이란에서 티무리랑(Tim-ur-i Lang)이 유럽권에서 Tamerlane이 되어 태멀레인 또는 타메를란이라 불린다.)이라 불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요즘은 'lame'이라고 하면 뭔가 멍청하고 형편없는 것이 더 연상 되겠지만, 실은 더 오래된 다른 의미가 있다. 원래 'lame'은 질병이나 상처로 인해 똑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나 주체를 의미했다. 요즘은 보행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일컬을 때보다는 궁색하고 멍청한 의미로 이 단어를 더 많이 쓰지만, 여전히 우리는 "레임덕(lame duck,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현상)"과 같은 현상을 언급할 때 절름발이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쓴다.

여기서는 '절름발이'의 뜻으로서 'Timur the lame'이라는 별칭이 나왔다. 많은 전투와 전쟁에서 다친 티무르의 몸과 다리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그의 시신은 1941년 러시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오른쪽 다리에는 회복 흔적이 있는 상처 2개가 있었고, 오른쪽 손가락은 두 개가 없는 채로 발견되었다.

누군가가 당신을 멍청하다고 한다면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당신을 이 군사 지도자에 빗댄 것으로 생각하라. 그래도 사실 기분은 약간 나쁠 것 같다.

 

WILLIAM THE BASTARD/CONQUEROR

"서자 왕/정복왕 윌리엄"

그렇다. 이 윌(will)은 2가지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어린 시절 놀림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가공할 만한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102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윌리엄의 아버지는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었지만(장엄공 로베르 Robert the Magnificent라는 칭호를 얻었다), 어머니 헤를레바는 그렇게 대단한 가문의 혈통이 아니었다. 그녀가 윌리엄의 아버지를 어떻게 만나서 아이를 갖고, 출산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은 윌리엄이 사생아라는 것이다. 요즘이야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혼외 관계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엄중한 문제였다. 혼외관계의 아이를 서자(bastard)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다. 이것이 어린 시절 윌리엄이 서자 왕 윌리엄이라고 놀림을 받게 된 이유이다.

'bastard'라는 단어 자체는 꽤 흥미로운 어원을 갖고 있다. "안장 아들(packsaddle son)"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fils de bast'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말은 이동 중에 안장을 베개 대신 썼기 때문이다. 즉 "안장 아들"이란 안장을 임시방편의 침구로 사용했을 때 갖게 된 아이를 뜻한다.

우리 모두 윌리엄이 평생 그 이름을 짊어진 채(내가 여기서 또 '짊어진다(saddle)'는 말을 쓴 것을 눈치챘는가?)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서자로 불리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노르망디 공국 출신 공작의 아들이다. 부친이 예루살렘 순례길에서 목숨을 잃을 당시 그는 겨우 8살이었고, 그해 노르망디 공작으로 인정 받았다. 윌리엄은 프랑스 역사에서 혼돈의 시기에 공작으로 성장했고, 먼 친척뻘 되는 잉글랜드의 참회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와 호형호제하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윌리엄에게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임종이 다가오자 윌리엄 대신 가까운 동맹이었던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을 임명했고, 이에 서자 윌리엄은 분노했다.

윌리엄과 그의 부하들은 잉글랜드를 침공했다. 악명높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사망한다. 이로써 윌리엄은 잉글랜드의 첫 노르만 출신 왕이 되었고, 바로 여기서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훨씬 덜 모욕적인 이름을 얻게 된다.

 

AETHELRED THE UNREADY

"준비되지 않은 왕 애설레드"

우리 모두 "준비되지 않은(unready) 놈"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친구가 약속 장소에 늦을 것을 미리 알고 일부러 늦게 나간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국의 왕은 어떻게 하다 'unready'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애설레드의 이름에 있는 'unready'는 그가 법정에 들어서기 위한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 아니다. 이 이름은 사실 고대 영어단어 'unraed'의 언어유희에서 온 것이다. 이는 "evil(악)"과 "folly(어리석음)"부터 해서 그의 많은 것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noble counsel(고귀한 조언)"이라는 뜻의 'AEethelred' 이름과 결합하면 "bad/evil counsel(부족한/나쁜조언자)"라는 뜻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이름은 "well advised(제대로 조언을 받는)"를 의미하고, 그의 별칭은 고대영어 'unreed'에서 유래하여 "poorly advised(제대로 조언을 받지 못한)"를 뜻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이름과 관련한 공통 주제는 애설레드의 재위 기간에 주변인들이 그에게 미친 영향이다. 그의 왕실 의회는 'Witan(현인회)'라 불리었는데, 여기서 그가 했던 결정 중 가장 형편없기로 유명한 것은 덴마크가 잉글랜드를 침공했을 때 했던 것이다. 덴마크인들이 잉글랜드 땅을 약탈한 이후 그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애설레드 왕은 그때가 다시 한번 덴마크 정착민들을 공격할 적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결정인지 자문단의 결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은 이 결정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해준다.